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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상/미술

서양회화 그리고 정물화

by Con Lai 2022. 6. 2.

정물화는 물질에 대한 인간의 욕망을 잘 반영한 그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정물화 감상은 바로 물질에 대한 인간의 욕망, 경험, 애환을 되새김질한다는 의미로 해석이 가능하다. 정물화가 유럽에서 본격적으로 발달하기 시작한 것은 17세기 초부터다. 프랑스 회화 및 조각 아카데미는 1660년대 정물화를 아카데미 공식 장르로 인정하기에 이르렀다. 

움직이지 않기에 꼼꼼히 관찰하여 사실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정물은 화가의 조형 능력과 기술적인 능력을 잘 보여주는 소재다. 또한 다채로운 형태와 색채로 화면에 활기를 불어넣는 중요한 윤활제로 화가들의 사랑을 받는 편이다. 그 후 17세기부터 본견적인 장르로 독립하였다.

 

 

정물화가 독립 장르로 분류된 것은 무엇보다 당시 유럽의 사회적, 경제적 변화가 크게 작용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중세 말 이후 유럽에서는 봉건적인 영주와 농민 관계가 흔들리면서 독립 자영농민과 독립 수공업자를 중심으로 한 중산층 계급이 크게 형성되면서 농업 생산도 함께 늘었다. 또 봉건시대에 물물교환에 의지했던 경제 구조에서 화폐를 통한 경제 활동이 증가하였다. 이런 조건의 변화에 발맞추듯 16세기 네덜란드에서 당시 물질적 풍요를 표현하는 화가들이 나타났다.

특히, 17세기 네덜란드는 스페인의 지배에서 벗어나면서 기존 귀족과 교회 세력이 몰락하고 공화국으로 거듭남으로서 시민사회에 어울리는 정물화라는 장르에 부응할 수 있었다. 그래서 역사화나 종교화같이 주제와 형식이 거창한 그림보다 정물화나 풍경화처럼 서민적인 그림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더군다나 이런 그림은 화가가 불특정 다수 고객의 기호와 선택을 고려해 제작하는 것으로 근대적 미술 시장 성립에 크게 이바지했다고 볼 수 있다. 

정물화는 17세기 이래 유럽인들에게 인기를 끌어 이탈리아, 프랑스, 스페인 등 유럽 주요 미술 중심지에서 활기를 띄었다. 19세기 후반 정물화는 자신의 미술사적 가치를 새로운 차원으로 올려놓게 된다. 산업화 시대에 들어와 역사화가 더이상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하면서 일상과 현실에 대한 관심이 풍경화를 주요 장르로 격상시킨 것처럼, 정물화 역시 각광을 받았다. 이는 현대미술 전개와 관련 있는 것으로 Paul Cezanne가 그 대표적인 화가라고 이야기할 수 있다.

Paul Cezanne의 그림을 살펴보면 결국 보이는 실체와 인지되는 실체가 서로 다르다는 점을 미루어 짐작 가능하다. 화가는 우리의 경험과 기억에 의해 번안된 실체가 아닌 보는 순간 생생하게 다가오는 날것 그대로의 실체를 그려야한다고 믿었다는 것이다. 이렇게 그려진 세계는 우리의 오감으로 통제되기 이전 실질적으로 순수한 시각 경험만 전달한다. 이것은 우리 기억이나 관념 또는 세계를 보는 방식의 변화 등으로부터 영향을 받지 않는 그 자체이다. 이런 원초적인 시작 구성 요소를 표현함으로써 정물화 중심 화가들은 자연스레 입체파와 추상파로 이어지기도 했다.

결국 정물화는 화가로 하여금 고도로 기술을 발휘해 인간의 시각이 갖는 한계와 가능성을 시험하게끔 하는 그림이라고 할 수 있겠다. 대상을 마음대로 선택하고 배치할 수 있고 색채와 명암, 질감, 공간 등 모든 것을 화가 자신만의 입맛대로 연출해 그릴 수 있기에 인기가 많다. 정물화 안에는 인간의 희노애락과 관련된 다양한 메시지를 전달해주는 소재도 있다. 이 모든 요소들이 오늘날 정물화를 가장 가깝고 편한 그림으로 느끼게 만들었다는데 일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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