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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상/미술

서양회화 그리고 모델

by Con Lai 2022. 6. 3.

서양 미술은 인간을 표현하는 방식을 수없이 고민해왔다. 인도를 제외하면 다른 지역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나체상이 많은 것 또한 인간 표현에 집착해왔다는 뜻으로 설명이 가능하다. 이렇듯 인간을 주된 소재로 묘사하고 사실적이고 과학적인 형식을 중시한 탓에 모델이라는 존재가 큰 역할을 했다. 사람이 등장하는 그림을 그릴 때 모델을 통해 구체적이고 사실적인 묘사를 실현하는 미술로 승화한 것이다. 물론 동양에서도 초상화를 그릴 때 대상을 보며 그리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초사화 이외 그림을 그릴 때 사람을 동원해 어떠한 내용에 맞게 옷을 입고 포즈를 취하는 등의 체계를 구축한 것은 서양 스타일이지 동양 스타일이라고 하기 어렵다. 그렇기 때문에 회화에서 모델의 역할을 이해하는 것은 서양 미술을 이해하는 중요한 방식이 되겠다.

 

 

서양에서 모델을 활용한 전통은 고대 그리스부터 시작한다. 그리스 조각의 정확한 인체 표현은 어떤 형태로든 모델을 참고하지 않고는 취하기 어렵다고 볼 수 있다. 예술가에 따라 심지어 해부까지 했을 수도 있다는 이야기도 있다. 고전 그리스 조각 수준에 다다르기 위해선 뼈, 근육 구조, 움직임 등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뒷받침돼야 하기 때문이다. 

중세 기독교 문화에서 영혼과 육체가 서로 대립된다고 보았다. 그 이유는 누드 표현이 많이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는 르네상스 시대에 접어들어 16~17세기의 사실주의 전통으로 부활하였다. 누드모델을 통해 인체를 완벽히 표현하는 기술이 화가가 반드시 습득해야 하는 주요 스킬이 되었고 미술학도들은 그 과제를 달성하기 위해 힘을 다했다. 여기서 흥미로운 사실 한 가지는 19세기 중반까지 아카데미에서 누드 습작 대부분이 남성 모델이었다는 점이다. 반면 여성 모델은 아뜰리에에서 했다. 19세기에 여성 모델에 대한 관심이 최고조에 이르렀을 때, 주류 여성 모델은 유대인 -> 이탈리아인 -> 프랑스인으로 변화하였다. 

이 밖에 모델들의 수입은 현재와 달리 매우 낮았다. 그리고 사회적 인식 또한 좋지 않는 편이었다. 모델의 삶은 화려하지도 않았다. 20세기 이전까지 모델이 된다는 건 하인 같은 하층민의 일로 치부되었다. 심지어 미술가들도 본인들의 사회적 지위와 품위를 지키기 위해 모델과 일정 거리를 두었다고 한다. 이후 19세기 말이 되어서야 전위예술가들 사이에 보헤미 아니 즘이 퍼지며 평등한 관계가 형성되기 시작했다. 20세기 들어서면서 일명 스타모델도 배출됐다. 이처럼 서양 미술에서 모델은 예술가들의 뮤즈로서 역할을 톡톡히 하였다. 그들은 화가들이 어떻게 그려야 하는가에 대한 답을 줬다. 모델로서 그들 자체가 이상적이면서 궁극적인 존재였다고 볼 수 있다. 

이와 함께 서양 미술에서는 모델 전통 이외에 해부학 등 인간의 사물화 과정을 통해 얻은 과학적인 지식을 인간의 삶을 개선하고 아름답게 하는데 활용하겠다는 훌륭한 목적도 있었다. 하지만 그런 과정이 비인간화라는 부작용으로 번질 수 있다는 가능성 또한 내재돼있다. 하지만 서양 예술가들 나름대로 과학자들처럼 고뇌와 고민을 하면서 꽤나 의미 있는 미학을 만들어왔다. 그들의 작품을 보고 감상하는 것은 그러한 아름다움과 힘을 느끼기 위함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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