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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상/영화

영화 연애의 목적 그리고 이해

by Con Lai 2022. 6. 13.

이 영화를 가지고 20대의 사랑을 얘기하기엔 꽤나 무거운 주제를 다루고 있다. 작품 외적으로는 ‘젠더’라는 것이 학교라는 보수적인 장소에서 극대화되는 모습을 이 영화를 통해 가감 없이 보여주고 있다. 작품 내적으로는 극 중 유림과 홍이 시간의 흐름에 따라 서로에게 어떠한 말과 행동으로서 아슬아슬한 관계를 형성해 가는지에 대한 모습을 사실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또 다르게는 과거의 아픈 상처로부터 헤어 나오지 못하는 홍에게 현재에 머물고 있는 유림이 다가감으로써 새로운 사랑을 끄집어내기도 한다.

 

 

우선 사랑을 대하는 것에 있어 남자와 여자는 본질적으로 다르다는 거다. 여자는 사랑을 통해서 영원한 관계를 꿈꾸고, 그것을 두 사람의 관계 속에서만 해석하려는 경향이 있다. 반면 남자는 사회적 관계 속에서 이해하려는 편이다. 그렇기 때문에 남자는 사랑 때문에 단순해지기 보다는 복잡해져서 여자처럼 오로지 두 사람의 관계에만 집중하기가 힘들다. 만일 사회적 관계들과 개인적 사랑이 충돌할 때, 남자는 적당한 타협을 모색하고 가부장제에 기초한 사회도 그러한 타협을 독촉한다. 심하게는 사회 그 자체가 지닌 힘으로 사회적 관계들과 충돌하는 개인의 사랑을 파괴하기에 이른다. 이처럼 현실과 충돌하는 사랑을 하게 될 때, 결과적으로 남자는 여자를 파괴하거나 자기 자신을 파괴하는 두 가지 중의 하나를 선택하도록 강요받는다. 극 중 유림과 홍의 갈등이 심화됐을 때, 유림은 홍의 전 남자처럼 홍에게 상처를 주고, 이것을 통해 유림 스스로가 가부장제에 기초한 사회의 상징이 되는 것으로 그려진다. 이로써 남성 중심의 사회가 어떻게 보면 자잘한 남녀관계에까지도 뻗어 나가 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반대로 유림이 일개 교생이고 홍은 선생이었다면, 아마 얘기는 달라졌을 것이다. 사랑보다 우위에 있는 것은 어찌 보면 둘의 권력 관계라고도 볼 수 있다. 이것 역시 ‘성’에 대한 고정관념일 수 있겠으나, 대개 남자의 요구를 여자가 받아들이는 편이다. 또 성관계를 맺을 때 역시 여자는 너무 주도적 이어선 안 된다. 왜냐하면 헤픈 여자라고 의심받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거절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되진 못한다. 설령 거절하려는 뉘앙스를 취했다면, 남자는 그 순간 "날 사랑하지 않냐"며 역정을 부리거나, 혹은 "곧 결혼할 사이니까 괜찮다"며 달래기 시작할 것이다. 그렇게 "하기 싫다"는 말이 제대로 받아들여지지 않는 상황에서 성관계를 맺게 되는데, 그게 바로 '강간'이 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썸 혹은 연애 중에 사랑을 핑계 삼아 상대의 동의 없이 성관계를 맺는 것이다. 수학여행 갔을 때 유림이 저지른 행동이 대표적인 예시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여기서 “5초만 넣고 있을게요.”라고 말하는 뻔뻔한 남자가 뻔뻔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찾아볼 수 있다. 홍의 전 남자의 신상을 자신의 여자에게 부탁한다거나, 홍의 선배에게 이런저런 얘기를 털어놓는 것을 보면 사랑을 몰라도 너무 모르는 서툰 남자임을 알 수 있다. 사랑의 ‘사’ 자도 잘 모르는 것이다.

 

출처 : 다음영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다시금 연애에 빠져들었던 이유는 몸으로 먼저 상대를 느꼈고, 그것에 대한 좋은 기억을 간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처음만나 정신적 교감을 한 후 자연스레 사랑을 나누는 것이 적절하다는 사람이 있는 반면에 사랑을 먼저 나누고 정신적 교감을 일구어내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오로지 서로에게 쾌감을 준다는 미명 아래에 자신이 필요할 때만 찾는 이기적인 사랑, 상대방을 배려하지 않는 섹스 속에 사랑이 있을 수 없으며, 그러한 섹스 역시 큰 만족감을 준다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나아가 이러한 관계의 결과는 보통 여자가 불리하다. 하지만 오로지 여자라는 ‘성’적인 것에 얽매이는 것 너머로 본다면, 유림과의 만남이 그녀의 삶에 큰 영향을 끼쳤다는 사실이다. 철저하게 과거에 집착하며 모든 것에 수동적이고 폐쇄적이었던 것이 변하게 된 것이다. 영화에서도 볼 수 있듯이 홍은 현재의 시간보다는 과거의 기억에 의존하여 비친다. 그녀는 오로지 유림 앞에서만 현재의 시점으로 존재할 뿐이다. 이로써 홍은 스스로 아픈 기억을 점점 떨쳐내면서 유림을 받아들이는 계기이면서 동시에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으로 변모하게 된다. 특히 유림이 홍의 핸드폰에 저장되어 있는 번호들을 모두 지워버림으로써 그녀가 더 이상 과거로 회귀하지 못하도록 만들어버린다. 생각도 못한 채로 과거와의 연을 끊었다는 것 자체는 굉장히 당황스러웠을지도 모르겠지만, 결정적으로 나중에는 홍이 사랑하는 유림을 파멸시키는 복선으로 작용하게 된다.

이렇게 처음에는 마냥 과거의 상처에 사로잡혀 연약해보이던 홍이 극 후반부에 가면서 꽤나 쿨 한 면모를 보여준다. 흔한 레퍼토리에서 벗어나 조금은 격렬한 연애를 통해 상처를 극복해나가는, 다르게는 점차 변하는 모습들을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보여주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유림 역시 유치하고 저급한 어휘를 남발하는 미성숙한 남자에서 내적으로 성숙하고 또 진일보하는 모습들을 내비친다.

언뜻 보기엔 이들이 연애자유주의자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쉽게 상처받고 아파하는 남녀이다. 이처럼 쉽게 몸을 허락한다고 해서 반드시 개방적인 성향일 것이라는 것은 아니다. 원래 남을 잘 믿거나 혹은 사랑 없이는 살기 힘든 사람들에게서도 이러한 증상은 나타나기 마련이다. 썸 혹은 연애를 하는 사람들이 사랑과 강간의 경계를 아슬아슬하게 걸어가는, 자칫 폭력적일 수도 있는 연애를 보다 현실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그래서 우리가 여태 해왔던 연애들에 대한 이해가 잘못되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하나의 계몽 영화 같기도 하다. 만일 철저히 세상을 속여서라도 사랑하는 사람을 완벽하게 소유하는 것이 연애의 궁극적인 목적이라면, 나는 연애라는 것이 단지 집착으로 밖에 보이지 않을 것 같다. 그러므로 어느 한쪽이 다른 한쪽을 소유하는 것보다는 상호 간의 소통과 이해를 바탕으로 남녀관계를 지속시켜야 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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